李 白, (701-762) 盛唐(성당)의 詩人. 字는 太白(태백), 號(호)는 靑蓮 (청련)
스스로 酒仙翁(주선옹)이라 했다.
中宗 長安 元年(중종 장안 원년), 사천성에서 출생,
10살에 벌써 詩書(시서)에 통하고 百家書(백가서)를 탐독했다.
고향에서 소년시대를 보내고, 뒤에 각지로 방랑,
襄州 漢水(양주 한수)로부터 洞庭湖(동정호)로, 다시 長江(장강)으로 내려가
金陵(금릉)을 거쳐 楊州(양주)등으로 돌아다니며 호방한 생활을 하고,
35살때에는 太原(태원)에서, 산동성 任城(임성)에서
孔巢文(공소문)韓 準(한준)․裵 政․(배정)張淑明(장숙명)陶 沔(도면)등과 만나,
이른바 竹溪六逸(죽계육일)의 교유를 맺고, 742년 42살 때 翰林院(한림원)에 들어갔다.
시와 술로 명성이 높았으나, 결국 술이 원인이 되어 744년에 실각,
陳留(진류)에 이르러 道士(도사)가 되고,
江南(강남)에서 玄宗(현종)의 아들 永王(영왕)의 모반에 가담한 죄로 옥에 갇혔다가
이듬해 夜郞(야랑)에 유배되어 가다가 도중에서 풀렸다.
代宗(대종)이 즉위하자 拾遺(십도)에 배명, 11월에 當塗(당도)에서 62살로 죽었다.
李 白은 自然兒(자연아)였다.
喜悲哀歡(희비애환)을 그대로 노래에 옮겨, 그의 작품은 한껏 자유분방하여
天衣無縫(천의무봉)의 神品(신품)이라 하거니와,
당시 그와 아울러 일컬은 杜甫(두보)가, 새로운 詩風(시풍)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李白은 漢魏(한위) 六朝(육조)이래의 詩風(시풍)을 集大成(집대성)했다.
모랄에 민감하고 정치에 관심을 보인 杜甫(두보)와는 달리, 현실을 떠난 감정의 소유자였고.
그는 당나라 문화의 爛熟期(난숙기, 완전히 익어 문드러지는 시기, 즉 말경)에 生을 받아,
그 퇴폐적 기풍에 젖은데다가 불우했기 때문에 술과 여자로 憂愁(우수)를 잊으려 했다.
詩文集 <李太白集> (시문집, 이태백집) 30권이 있다.
峨眉山月歌(아미산월가)
峨眉山月半輪秋 (아미산월반륜추)
影入平羌江水流 (영입평강강수류)
夜發淸溪向三峽 (야발청계향삼협)
思君不見下渝州 (사군불견하유주)
가을 밤 아미산에 반달이 걸려
평강 깊은 물에 흘러가는구나
청계를 밤에 나서 삼협으로 가는 길에
너도 못 본 채 유주로 내려간다.
평소에 한문을 접 할 기회가 적어서,
갈수록 한문의 자, 획을 잊어버리는데,
가지고 있는 자료는 모두 한문으로 적어 있어서 해석을 올리기는 하지만,
긴가만가 어리버리 합니다,ㅎㅎㅎㅎ,
보시는 분들의 이해 있으시기를,......
靜夜思(정야사)
牀前看月光 (상전간월광)
疑是地上霜 (의시지상상)
擧頭望山月 (거두망산월)
低頭思故鄕 (저두사고향)
침실로 스며드는 달 그리매
어찌 보면 서리가 내린 듯도 하이
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고는
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노라.
교원인사이동에 화분도 모두 보내고,
너무 피곤하여 한 숨 자다가 일어나니 지금 이 시간,
이 밤,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문득 생각나는 중국의 시선인, 이백의 시가 2편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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