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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한담

남도를 돌아보다,(순천,벌교,조성,예당,득량,장흥,강진,약산,)

by 扁宜雪裏不爭春 2016. 1. 23.

이 글 끝나고 아래의 중고관리기 글에서 쓴 것처럼,

지난 수요일 12시 경, 순천에 있다는 관리기 구입하러 내려갔는데,

관리기를 본 것이 아니라 넝마가 된 고물만 본 지라,

관리기 구입을 포기하고서, 완도의 지인이 부탁한 색소폰 갇다 주려고,

참고막으로 유명한 벌교를 거쳐서,  조성의 지인 집에서 하루저녁 자고서 완도로 내려갔습니다,

수 십년 전이지만, 당시에 자생란에 미쳐 온 나라를 헤메일 때 맺어놓은 인연을 지금도 이어오면서,

이렇듯 제가 필요하면 도움도 받곤 하는데,

아래 사진은 벌교의 지인집에 들렸을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한 겨울 짧은 해는, 벌써 서산으로 지는데,

일락서산, 월출동녁이라던가?

동녁에서는 사진에서 보이듯이 달이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찬 서리와 세찬 비바람에 천둥과 번개소리 들어가면서 애써 맺은 열매는,

이렇듯 제 구실을 못하고 처량한 모습들을 하고 있는데요,

관리기로 열받은 마음에, 아침겸 점심만 먹고서 이제까지 빈 속을 몇개의 감으로 채웠습니다,

 

 

글을 올리려고 작정을 하고 내려갔으면, 사진기를 가지고 갔겠지만,

관리기 구입코자 내려간 것이라서 미쳐 챙기지 못하고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라,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ㅎㅎㅎㅎ, 

 

 

보성군에 속한 벌교를 지나, 조성면의 지인 집에서 하루저녁 지내고서,

예당 득량 보성을 거쳐서 장흥 내려가는 중에 찍은 이정표입니다,

이왕 멀리까지 내려왔으니, 혹여 있을지도 모를 관리기 찾느라,

생 전 처음으로, 보성의 피시방에서 인터넷 접속도 해 보고 농기계 판매하는 곳도 들려 보았으나,

원하는 물건을 구입치 못하고 내려가는 중에 찍은 사진인 데,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요즘 궂은 날씨탓에,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풍경 모두가, 을씨년스러운 모습들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이체로운 것은, 하룻밤 묵은 조성이나 예당 득량을 지났는데도,

어느 한 곳도, 대도시에는 흔한 피시방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언젠가는 이런 시골로 내려와야 할 것인 데,

도시에서는 날마다 끼고 사는,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경험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드디어 강진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단국대 부설 도예학교가 보이는데,

여기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도자기 박물관도 보입니다, 하지만,

차선 반대쪽에 있는 도자기 박물관을 돌아올 때 찍을려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올 때도 잊어 버리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수 년 전에 이미 구경 했었습니다 만,ㅎㅎㅎㅎ,

 

사진의 위와 아래는 단국대 부설 도예학교의 내부로 들어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마도 초등학교가 있었던 자리에 설립한 모양인 데,

스산할 정도로 텅 빈 운동장에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고,

위의 부조물과 아래의 도공 아저씨가 지키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강진이 도자기 마을임을 알리는 살아있는 이정표인데요,

산속의 나무들로만 이렇듯 청자의 모습으로 기르고 있는데,

수 년 만에 한번 씩 들리는 곳이지만, 오 갈때마다 매우 인상깊은 모습입니다,ㅎㅎㅎ, 

 

제가 20대 때, 아래 사진의 고금도와 약산도를 처음 밟았을 적에는, 모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던 곳인데,

쿠테타 박정희의 지역차별 정책으로 수 십년 동안 방치해 둔 호남의 섬들을,

그나마 김대중 정권때 힘을 쓴 바람에, 부족하나마 이 정도로 연결이 되었더군요,

그 전에는, 회진에서 배를 타거나, 강진을 거쳐서 마량으로 들어가서 항구에서 철부선을 타면,

제 목적지인 평일도 섬까지 거의 두 시간이 걸리던 뱃길이었는데,

지금은 이렇듯 다리로 연결되어, 어느 시골길을 달리는 것처럼 차를 몰아 가고 있습니다,

아래의 당목항에서 배를 타면, 평일도 일정항까지 20여 분도 않되는 거리 인 것 같았습니다,

 

 

따뜻한 동네인 지라, 유자가 아직도 달려있습니다,

 

 

 

 

위와 아래 사진들은, 약산면 거치고 당목항에서 배를 타고 평일도로 들어가는 상황인데요,

떠나면서 배에서 찍은 당목항의 모습입니다,

여느 크고 유명한 항구는 아니지만, 잔잔한 애수를 간직한 그런 소박한 항구입니다,

다만, 배타는 데 있어서,  그 전에는 없었던 신분증 제시하라는 말에 열을 받아,

표 파는 사람과 약간의 언쟁을 하고 말았는데,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이겠는지?

이 나라 쥐새끼 패거리들의 정권은, 국민들이 어디를 다니는지,

일거수 일투족에 왜 그렇듯 관심이 많을까요?

차라리, 북한 김일성 일가의 독재정권을 따라가고 싶다고, 왜 말 못하는지?

상전으로 모시는 미국의 눈치 보여서 그런가? 

 

위의 사진은 배 타고서 찍은 바다의 모습인데

사실 이 동네는, 옛날 제가 처음으로 철부선 타고 오 갈때부터 이제껏,

배 타고서 보이는 것은, 김과 미역, 그리고 전복 양식장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ㅎㅎㅎㅎ,

사진으로 멀리 보이는 것은 김 양식장 같은데요,

철부선 오가는 길 외에는 거의 이런 양식장들로 덮여있는 것이 옛날부터 이제껏, 이 동네의 모습입니다,

위의 사진은, 철부선 타고 가는 중에 휴게실 안에서 찍은 제 모습입니다,ㅎㅎㅎㅎ,

가끔 전화하신 분들이, 제 사진 좀 올리라고 하시는데도 이제껏 올리지 않았던 것은,

잘 생기지도 못한 얼굴, 온 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뭐해서 였는데,

비록 잘 생기지는 못했을지라도, 내 후년이 60 치고는 아직도 젊은 모습이고,

여느 농사짓는 사람들의 검붉은 얼굴과는 달리, 하얀 얼굴에

하나 둘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듬성거리는, 친구놈들의 머리털과는 달리,

아직도 젊은 시절 그대로의 머리숫을 자랑하는데, 앞은 짧지만 뒤의 긴머리는 아직도 한웅큼입니다,

옷 입는 스타일도, 아직은 젊게 입는 것이 더 어울리죠,ㅎㅎㅎㅎ,

 

이후의 글은 내일 이어집니다,

제 얼굴 보지 않고는, 토란과 매화분재 구입치 않겠다던 몇 분들,

이제는 제 얼굴 올렸으니, 많은 구매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은,

팔아먹을 토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