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생각해 보아도 50여 년이 훌쩍 흘러버린 오래전..
누구나 할 것 없이 10살 조금 넘는 그 나이 때쯤에는, 시대를 초월해서 철이 없고 생각이 단편적인 시기이지.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이라, 한 반 3~40명 중에 책가방을 들고 오는 아이는 고작해야 한 두 명 정도나 되었을까?
한참 후에야 알았지만, 당시가 베이비붐 시대라서 학생들이 너무 많다 보니,
오전 반과 오후 반으로 나누어서, 한 교실에서 약 7~80여 명이 공부하던 시절이었고.
12시 정도에 수업을 끝낸 저학년이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배가 고파오는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어 걸어가 본 길은, 불과 20여 분도 안 걸리는 짧은 거리였지만.
국어 산수 등 책 몇 권과 공책을, 보자기에 둘둘 말아 어깨에 둘러매고 집에 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계절 따라 바뀌는 먹거리 겸 장난거리였다.
빈 논에 뛰어노는 개구리 잡기를 비롯해서, 여름철의 방아깨비 잡기와 가을철의 콩서리 등.
그중 가장 재미있는 장난거리는, 볏짚으로 얼기설기 얽어놓은 허름한 울타리 너머로.
3분의 1 정도 가지를 바깥으로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에서 익어가는 살구를 따 먹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철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누구나 할 것 없이 배고픈 시기와 맞물려.
한참 커가는 나이에 뱃속의 허기를 이기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해 살구가 한참 익어가던 날.
항상 했던 버릇대로, 살구나무에 다다르기 전 굵직한 돌멩이를 주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살구나무 근처에는 그만큼 큰 돌멩이가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고.
드디어 살구나무 밑에 이른 나는, 주어 온 돌멩이들을 하나 둘 던지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한 두 번 던지는 돌팔매질이 아니라서, 집안에 깨질 우려가 있는 장독대 위치는 이미 파악한 상태였지만.
그날따라 먹음직스러운 노란 살구가 나뭇가지 끝에서 유혹하는 것을 보고, 장독대 위치를 깜빡 잊어버렸다 는 것이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 조금 후에, 방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 놈이 돌멩이를 던지냐~~ 고, 고함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나는 뛰기 시작했다.
울타리 너머 집안에서 들리는 질그릇 깨지는 소리와 중년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고성에서,
이미 사태 파악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도, 곧바로 집으로 뛰면 범인이 누군지 금방 알아챌 것을 염려한 나머지,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뛰었고.
점심을 놓치면서 까지, 고픈 배를 부여잡고 들판에서 2~3시간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아니,...... 살구나무 집 여자가 우리 집에 놀러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 놈이 돌을 던져서 장독대 뚜껑을 깼노라고 욕을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어떤 못된 놈 소행인지 잡아서 혼을 내야 된다 고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범인임을 알고 찾아왔는지.
아니면, 평소에도 우리 집과 가깝게 지냈던 사이라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동네에서 사는 동안 내내, 살구나무집 여자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움찔했던 기억만이 남아있었는데,....
재래종 살구
벌써 3년이 지나갔나?
옥천군 이원면 나무시장에서 본 살구나무 묘목을 구입한 시기가...........
당시의 기억이 새롭기에, 굳이 토종 품종과 개량종을 각 한 주씩 구입해서 심어 올해 드디어 결실을 본 것이다.
옛날의 못된 장난질을 생각하면서 토종 품종을 구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개량품종보다 알도 잘고 신맛이 강해서, 그냥 먹기에는 별로 권할 것은 아닌 것 같다.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완전히 익기 전이라도 씨가 분리되기 때문에 절임용으로 좋을 것 같고.
개량종은 알이 상당히 굵은 것은 좋지만, 물렁한 상태까지 이르러야 씨가 분리되기에.
절임보다는 생식용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첫 해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을 수확했기로, 모두 모아서 씨 분리한 다음 설탕에 절여두었지만.
사실 만들기는 했어도, 무슨 대단한 먹거리라고 집안 식구들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강권할 수도 없어서.
평소에는 잘 먹지 않은 국수를 구입해다가 시원한 냉수에다 한 국자씩 부어서 말아먹었더니.
그나마 먹을 만 한데,.....
이렇듯 설탕으로 졸여서 먹어도 맛이 없는 살구가, 당시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 맛이 있었을까????
아무것이나 먹어도 맛이 있었던 그 시절 그 추억에, 새삼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쉽게 느껴지는 밤이다.
'농촌한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윈도우 11 (windows 11)사용해 보셨나요? (0) | 2022.07.13 |
---|---|
노트북을 구입했습니다. (0) | 2022.07.05 |
나토회의 참석 성과보다 건희의 패션 쑈가 더 대단한가? (0) | 2022.07.03 |
미나리의 추억(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시절을 그리며) (0) | 2022.04.18 |
쥴리의 인스타그램(천박한 무당과 술집 작부의 표본) (0) | 2022.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