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버디 몃치나하니,水石과 松竹이라,
東山의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삿 밧긔, 또 더하야 어엇하리.
(고산유고)
나의 벗이 몇이나 되는가 헤아려 보니,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다. 게다가 동쪽 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다. 그만두자, 이 다섯 가지면 그만이지,
이 밖에, 다른 것이 또 있은들 무엇이겠는가?
이 다섯 밖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이 시조는 五友歌의 서시이다.
五友歌는 작가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觀照(관조)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五友란 水 , 石, 松, 竹, 月로서 이 시조는 이것을 모두 묶어
다음에 전개되는 내용을 총괄하여 놓은 것이다.
설명적으로 또는 서사적으로 되기 쉬운 내용을
초장에서 문답식을 사용하여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중장에서 달이 들었지만 나열식이란 감이 나지 않을뿐더러
초장의 지상물과 중장의 천상의 것과의 공간적 연결까지 느끼게 하는
자연스런 구성이다.
그러므로 종장의 부연도 중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하는 오우가의 전문입니다,
쟈근거시 노피 떠서 萬物을 다 비취니
밤듕의 光明이 너만 한 니 또 잇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벋인가 하노라.
(고산유고)
작은 것이 하늘 높이 떠서 세상의 만물을 다 비추니,
캄캄한 밤중에 밝은 빛이 너 만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밤중에 혼자 떠서 세상을 굽어보면 추악한 것이 있을 텐데도 아무 말도 없으니,
그 군자다운 점이 나의 벗 인가 하노라.
달은 캄캄한 밤중에 높이 떠서 암흑에 싸인 세상을 밝혀 주는 존재다.
물리적인 암흑만이 아니라,
인간의 우매성, 바르지 못한 마음속까지 환하게 밝혀 주는 것이다.
곧 月印千江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自尊自誇함이 없이,
침묵 속에 잠겨 있는 군자풍의 德性이 좋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없는 말까지 만들어 중상모략을 일삼는,
현실을 체험한 작가로서 하나의 염원하는 인간상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구름비치 조타하나, 검기랄 자로한다
바람소리 막다하나, 그칠적의 하노메라,
조코도 그츨뉘 업을손, 물뿐인가 하노라,
(고산유고)
구름빛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가끔은 먹구름이 끼고,
바람소리가 맑기는 하지만, 가끔은 불지 때도 있도다,
깨끗하고 끊어짐이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四時에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고산유고)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란 것은 누가 그렇게 시켰으며,
또 속은 왜 그렇게 텅 비어 있는가.
저러면서도 네 계절에 푸르니, 나는 바로 그것이 좋은 것이다,
.
대나무는 얼른보면 나무 같기도 하고 또 풀 같기도 한 것이다.
형태상으로 관찰한 대나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그러면서도 저렇게 곧게 솟았음은 무슨 조화인가? 하고,
경이의 눈을 크게 뜨고있다, 게다가,...,
사시사철 푸르니 대나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나무에 있어 곧은 것은 강직한 심성이요,
속이 빈 것은 虛心坦懷한 마음이요, 사시에 푸름은 지사라 하여 찬양을 받았다,
대나무를 노래하되 대나무라는 말은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고
형태와 습성 등을 의인화하여 대나무의 모습을 그려낸,
기묘한 수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우면 곳 퓌고, 치우면 닙 디거늘,
솔아 너는 얻디, 눈서리를 모르는다,
九泉의 블희 고든줄을, 글로하야 아노라,
(고산유고)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날씨가 추워지면 나무의 잎은 떨어지는데,
소나무여, 너는 어찌하여 눈이 오나 서리가 내리나 변함이 없는가?
그것으로 미루어 깊은 땅 속까지 뿌리가 곧게 뻗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나무의 변함이 없는 常靑에서 꼿꼿한 節槪(절개)를 느끼고
그것을 찬양한 시조다.
論語에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속뜻은 겨울이 되면 다른 나무들은 다 凋落하나
소나무와 잣나무는 常綠의 푸른빛을 띠고 다른 나무와 같이 凋落하지 않는다.
식물이나 인간이나 살아가기에 조건이 좋을 때는 다 같이 좋은 조건아래 누리므로,
역경에도 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찬바람이 일고 서릿발이 내리면 節槪(절개)를 지켜 나갈 능력자가 누군지
구별된다는 것이다. 곧,
평상시에는 小人과 君子의 구별이 잘 안되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소인은 이해관계에 따라 처신하고,
군자는 어떤 역경에도 지조를 굽힘이 없이 도의를 지켜나감을 비유한 표현이다.
소나무는 역경에서도 불변하는 충신열사의 상징으로,
옛 사람의 시가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곳즌 므스 일로 퓌며서 쉬이 디고
플은 어이하야, 프르는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티아닐 손, 바회뿐인가 하노라.
(고산유고)
꽃은 무슨 까닭에 피자마자 곧 저버리고,
풀은 또 어찌하여 푸르는 듯하다가 곧 누른빛을 띠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꽃과 풀의 짧은 생명에 비해서 바위의 불변성을 찬양한 것이다.
꽃이나 풀이 可變的이고 세속적이라 한다면 바위는 영구적이요 철학적이다.
꽃이나 풀이 富貴榮華의 상징이라 한다면 바위는 초연하고 달관한 군자의 풍모다.
그리하여 옛사람은 흰 화선지 위에 凜然(늠연)한 바위를 그려놓고
石壽圖라 하여 바라보며 좋아하였고 마당귀에 작은 바위를 옮겨다 놓고
물을주어 이끼를 앉히며 즐거워하였던 것이다.
무미한 속에서 최상의 미를 맛보고,
寂然不動(적연부동)한 가운데 雷聲霹靂을 듣기도 하고
눈감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마음이
모두 이 돌의 美學에서 나온다고 한 시인도 있다.
그만큼 바위는 동양미의 眞髓(진수)와 통하는 것이다.
작가는 거울같이 맑은 마음으로 온갖 잡념을 물리치고
禪(선)의 경지에서 바위를 바라보며 깊은 思索(사색)에 잠겨있는 것이다.
내 셩이 게으르더니, 하눌히 아르실샤,
人間 萬事를, 한 일도 아니 맛뎌,
다만당 다토리 업슨 江山을, 딕희라 하시도다.
<고산유고>
내 성질이 본디 게을러서 세상의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하늘이 다 알고,
세상 많은 일 가운데 한 가지 일도 아니 맡기시는구나.
다만 다툴 사람이 없는 자연을 지키는 일을 하라고 하시도다.
자연을 지키고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숙명으로 받아드리고
만족하는 심정을 노래하였다.
세상의 일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경쟁이 있고 승패가 있게 마련이지만
대자연을 사랑하는 것만은 아무도 시비를 걸어 올 사람이 없으니
이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노래의 이면에는
현실 사회에 용납지 못하는 작가의 도피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다,
내 일 망녕된 줄, 내라하야 모를손가,
이 마음어리기도, 님 위한 타시로쇠
아무 아무리 닐러도 님이 헤어 보쇼서.
(고산유고)
내가 한 일이 망녕된 줄을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나의 마음이 어리석은 것도 임을 위하는 충성심에서였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더라도 임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이 시조는 작가가 30세 때 당시의 권신 이 이첨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경원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권세에 아첨하여 출세나 생각했더라면
귀양살이의 서글픈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남이 하지 않는 상소 따위를 한 것은 망녕된 짓이요,
어리석은 노릇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국사를 그르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한 짓이니
결국 임금님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이라고 참소를 하더라도
자신의 진심과 억울한 사정만은 임금께서 살펴달라는 심정을 고백한 노래다.
夕陽 넘은 後에, 山氣 됴티마는,
黃昏이 갓가오니, 物色이 어둡난다,
아희야, 범므셔온듸 나다니디 마라라
(고산유고)
석양이 넘어간 후 산기는 좋지마는,
황혼이 가까우니 날이 어두워지는구나.
아이야 산속의 범이 무서우니 나다니지 마라라.
해는 서산마루에 떨어지고 어둠이 스며드는 저녁의 정경을 노래하였다.
종장에 범이 무섭다는 것은,
깊은 산 속임을 상징하는 동시에 소박한 산간 적 유머라 하겠다.
뫼흔 길고 길고, 믈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뜨슨, 만코 만코 하고 하고
어듸셔 외기러기,울고울고 가나니.
(고산유고)
유배지에서 그리운 고향을 바라보니 끝없이 산이 길게 길게 이어져 있고,
낯선 땅의 물이 멀리로 굽이굽이 흐르고 있구나.
산이 막히고 물이 가려서 갈 수가 없는데 부모님이 그리운 뜻은 많기도 많다.
그런데 나의 신세처럼 처량한 외기러기는 왜 울어 나의 마음을 구슬프게 하는가?
유배지에서 산 넘고 물 건너 멀리 고향에 두고 온 어버이를 그리는 정이
애절하게 나타난다.
“길고 길고” “멀고 멀고” “만코 만코” “하고 하고” “울고 울고” 등의 반복법의 사용은
哀愁와 慕情을 절실히 하는 효과가 있다.
보리밥 픗마물을 알마초 먹근 後에
바횟긋 믉가의 슬커지 노니노라
그 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를줄이 이시랴.
(고산유고)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후에
바위 끝이나 물가에서 실컷 놀며 지낸다.
그 밖의 다른 일 이야 하나도 부러워 할 일이 없다.
극히 평범한 시상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설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순수한 우리말로 이같이 향토색이 짙게 구수한 노래를 읊을 수 있다는 것은 孤山 만이 가능한 솜씨다.
보리밥과 산나물 같은 淡泊한 음식에 만족하고
바위 끝으로 구슬 같은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시끄러운 세상의 번잡함을 잊고 悠悠自適(유유자적)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살고 있으니
속세의 부귀영화 따위는 조금도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孔子의 “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반소식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 이란 말을 연상케 한다.
바람분다 지게 다다라, 밤들거다 블 아사라,
벼개에 히즈려, 슬커지 쉬여보쟈,
아희야 새야오거든, 내 잠와 깨와스라.
<고산유고>
바람이 부니 문을 닫고, 밤이 깊었으니 불을 꺼라.
자리에 누워서 실컷 잠이나 자련다.
아이야 날이 새어 오거든 잠든 나를 깨워다오.
밤이 깊었으니 만사를 잊어버리고 푹 쉬어 보겠다는 심경의 표현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평화와 안식을 잠이 가져다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쌈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 하노라.
(고산유고)
혼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먼 산을 바라보니 참으로 좋구나.
그립고 그리운 임께서 찾아온다 하더라도 이렇게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산은 말이 없고 웃지도 않지마는
어떤 말보다도 어떤 웃음보다도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여 주는구나,
인간과 교섭을 끊고 먼 산의 경치를 바라보며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문득 마음속에 박혀 오는 산의 모습, 웅장함과 태연자약함,
세상의 무엇보다도 미덥고 반가운 모습.
말 없는 말을 웃음 없는 웃음을 以心傳心으로 느끼면서 황홀한 기쁨에 젖는다,
때로는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친구가 찾아오면 좋으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도 가져 보지만, 이제는 이 산보다 더 좋은 친구가 있을 수 없다,
자연에 몰입된 산같이 의연한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江山이 됴타한들, 내 分으로 누얻느냐,
님군 恩惠를, 이제 더욱 아노이다,
아므리 갑고쟈 하야도, 해올 일이 업세라.
<고산유고>
아름다운 자연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을 내 분수로 얻게 된 것은 아니다.
모두가 다 임금님의 은혜인 것이다.
이렇게 큰 은혜 속에 살면서도 그 은혜를 갚을 수가 없구나.
한가하게 자연 속에 은거 하면서 임금의 은혜를 더욱 알게 되어
그 은혜를 갚고자 하여도 할 일이 없어 안타깝다는 것이다.
자연에 퇴거해 있으면서도 임금을 그리는 마음이 간절함을 나타낸 것이다.
현실 사회에서 도피해 있다 하더라도
본성이 충직한 孤山이 임금을 잊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심심은 하다마는, 일업슬 손 마히로다
답답은 하다마는, 閑暇할 손 밤이로다
아희야, 일즉 자다가 東 트거든 닐거다.
(고산유고)
장마철에는 할 일 없으니 한가하고,
밤이 되어 갈 곳이 없으니 잠이나 잘 수밖에 없다.
산중의 비오는 날의 한가함을 그대로 나타내었다.
山水間 바회 아래, 뛰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모론 놈들은, 욷는다 하다마는,
어리고 햐암의 뜻의는, 내 분인가 하노라.
(고산유고)
산수간 바위아래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
나의 뜻을 모르는 남들은 비웃고들 있지만
나 같이 어리석고 시골뜨기의 마음에는, 이만하면 내 분에 맞는 일인가 여겨진다.
이 시조는 丙子胡亂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盈德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金鎖洞(금쇄동)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이다.
혼란한 정계에서 물러나 산 속에다 띠집을 짓고 자연과 벗하는 생활을 하려고 하니,
세속적인 사람들은 나의 참 뜻을 모르고 비웃고들 있지만
우직한 나는 이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명리를 잊고
정신적인 평화를 누리려는 작가의 초탈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설날 영화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가지고 있는 자료집에서 고산선생의 시가를 모아 봅니다,
고산 윤선도선생은, 송강 정철선생, 노계 박인로 선생과 함께 조선조 3대가객 중의 한 분 이시죠,
태생은 한양이지만 본 고향은 전남 담양인 송강선생과 더불어 호남분인 데,
(노계선생은 경북영천)
역시나, 호남분들의 가락에 대한 재주는 예나 지금이나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제 자료에 있는 글들은 모두, 고어체로 써 있는데,
여기서는 고어체가 지원되지 않은 고로, 제가 임으로 해석해 놓았더니,
원글의 참 맛이 나지 않음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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