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대통령과 촛불집회(서거 9주기를 맞이하여)
쉬임없이 흐르는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가 벌써 9주기라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을 쏘아버린 화살 같다 하던가?
정치에 관심은 많아도 정작 정치인들은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개인적인 이유로도
노통이나 그의 부동산정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사람인데, 이유는,
김영삼정부 시절의 IMF로 인하여, 보증서 준 지인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느라 경매로 날아간 2층집과 땅을,
몇 년동안 고생해서 다시 회복하려던 찰나, 세종시를 발표해 버리는 바람에 땅값이 치솟아,
또 다시 수년동안 더 고생해서 이제야 겨우 자리를 마련하게 된 사연이 있는지라,
그의 미흡한 부동산정책을 원망했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십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무슨 원망을 할 것인가?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보이는 애틋함이나, 싫어했던 사람들이 보이는 폐악질에도, 별다른 느낌이 없는데,
확실한 것은, 그는 생 전보다는 사 후에 더욱 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는 점이다,
그의 사 후 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에 암암리에 내려오는,
대통령이하 위정자들의 처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지난 시절 촛불집회로 이어졌고
그 결과로 무능하고 간교하기까지 한 두 전직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으니,
그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이고 강력한 메세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결과가 있었을까?
http://blog.daum.net/dnscjsghk/533 (◀◀◀ 클릭, 변하지 않은 역사의 판박이)
오래 전, 위 링크에 올린 글에서,
고 노무현대통령과 정암 조광조선생, 두 분의 너무나 닮은꼴 운명을 적은 적이 있었다,
지금부터 499년 전, 조선조 중종시절의 기묘옥사는
젊은 나이에 대사헌에 올라서 도학정치를 시도하다가 수구들에게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은 사건이지만,
기가막힌 것은, 그 뒤 490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 당시의 기묘옥사가 또다시 재현되고 말았다는 것인데,
당시에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봉건왕조시절이니 만큼, 얼마든지 이해가 가능하다 해도,
대명천지 밝은 현재에, 그것도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나라에서 이런 기막힌 사전이 일어났다는 것은,
반도민족의 정치적인 미개함을 전세계에 알려주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정암 조광조선생을 죽음으로 몰고간 사건은, 중종반정을 이끈 공신들의 위훈삭제 상소가 발단이 되었지만,
상소 이 전부터 암암리에 모사를 꾸민, 허무맹랑한 주초위왕( 走肖爲王)사건은,
어리석은 중종의 마음을 돌리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였는데,
이 상황을 지난 고 노무현대통령에 대입해 본다면,
노통의 재임기간이나마 개혁을 실현하려 했으나, 수구들의 반발에 밀려서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퇴임후에는, 간교한 조작일보와 홍준표의 아방궁 나발과 논두렁 시계 선동으로,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잃어가는 와중에 터진 가족들의 뇌물사건은, 노통자살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왕조시대의 절대자였던 어리석었던 중종임금을, 현재의 주권자인 국민들에 비견한다면,
490년 전, 정암선생을 비릇한 개혁선비들이 화를 당한 기묘사화에서,
어이없게도, 주초위왕의 중상모략을 사실로 믿어버린 중중임금이나,
논두렁 시계와 아방궁으로 표현된 쥐새끼 무리들의 중상모략을 그대로 믿어버린 국민들이,
노통을 지켜주지 못한 결과로, 고 노무현대통령의 자살은 거의 판박이로 닮은 꼴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이 나라 쥐새끼들이 크게 착각했던 점이라면, 노무현대통령의 자살로 인하여,
진보가 멸절되고, 수구들의 세력이 탄탄대로처럼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개한 일부지방 사람들이나, 쥐새끼들의 아전인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노통의 자살로 인하여,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더욱 더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그다지 관심이 없던 국민들은, 이 나라 수구 쥐새끼들의 잔인하고 간교한 본 모습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지난번 무능 부폐한 박근혜정권을 몰락시키고, 근래에 사기군 쥐새끼를 영창에 집어넣은 원동력이 된
촛불집회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현 정권의 탄생이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무현대통령의 자살은, 개혁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본격적으로 개혁의 싹을 틔우는 밑거름이 되었기에,
노통의 자살이 없었다면, 위의 사건들은 거의 일어날 가망성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도, 500년 전 사약을 받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정암 조광조선생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비록 37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정암선생이었지만,
50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수많은 후학들의 사표가 되고 있듯이, 고 노무현 전대통령도,
앞으로 500년이 넘는 시간 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