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의 향기 13,(송강 정철선생 1편에 이어서)
이 곳에 먼져 들리셨다면,
앞 쪽의 "고시조의 향기 12, 를 먼저 보셔야,
밑의 글을 더 쉽게 음미하시면서 읽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쓴 나물 데온 물이, 고기도곤 맛이 있세,
초옥 좁은 줄이, 긔 더욱 내 분이라,
다만당 님 그린 탓으로, 시름겨워 하노라.
고기도곤: 고기보다.
있세: 있네.
긔: 그것이.
다만당: 다만.
분: 분수.
쓴 나물국이 고기보다 맛이 있다,
초가집 좁은것은 더욱이 내 분수에 맞는구나,
다만, 님을 너무 그린 탓으로 항상 시름겨워 한다,
어와 뎌 족하야, 밥 업시 엇디 할고,
어와 뎌 아자바, 옷 업시 엇디 할고,
머흔 일 다 닐러서라, 돌보고져 하노라.
어와: 아. 감탄사.
족하: 조카.
아자바: 아저씨여.
머흔 일: 굳은 일.
닐러서라: 말 하려무나.
아 ! 저 조카여 밥 없이 어찌할 것인고?
아 ! 저 아저씨여 옷이 없이 어찌할 것인고?
어려운 일 있으면 다 말해 주시오, 돌보아 드리고자 합니다.
貧窮憂患 親戚相救(빈궁우환 친척상구)란 제목이 붙은 것으로
어려운 친척을 서로 도와야 함을 노래한 것이다.
어와 棟梁材를, 뎌리 야 어이할고,
헐뜨더 기운 집의, 議論도 하도할샤,
뭇 지위 고자 자 들고, 혜뜨다가 말려느냐.
동량재: 기둥과 들보감. 나라의 중요한 책임을 맡아 다스릴 인물을 비유.
헐뜨더: 헐고 뜯고 하여.
기운: 한편으로 쏠린.
하도할샤: 많기도 하다.
지위: 목수.
고자자: 먹통과 자.
혜뜨다가: 허둥거리다가.
어허 기둥이나 대들보감이 될 좋은 재목을 저렇게 마구 베어 버리면 어찌할꼬?
헐었다가 뜯었다가 하여, 다 기울어진 집을 세울 생각은 아니하고.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기도 하다.
여러 목수들이 먹통과 자를 들고 허둥거리다가 말려고 하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법으로 표현했다.
"棟梁材"는 나라 일을 맡아 다스릴만한 인재를,
"헐뜨더 기운" 이란,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의 형편을
"뭇 지위"는 인재를 헐뜯고 모함하는 일에 더 열을 올리는 소인배들을 은유한 것이다.
당파 싸움으로 귀한 인재들이 많이 희생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警句이다.
남으로 삼긴 듕의, 벗 갓티 유신랴,
내의 왼 이름,다 닐오려 노매라,
이 몸이 벗님곳 아니면, 사람되미 쉬운가.
유신랴: 信義가 있으랴.
왼 이름: 그른 일을. 옳지 못한 일을.
남남으로 생긴 중에 벗 같이 신의가 있는 사이가 또 있는가.
나의 옳지 못한 일을 다 말하여 주려 하는구나.
이 몸이 이 같이 잘못을 일깨워 주는 친구가 아니면 사람됨이 쉽겠는가?
"朋友有信’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참된 우정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곧
참된 벗이란 친구의 잘못이 있으면 솔직히 충고해 주고 또
그 친구의 충고를 달게 받아 잘못을 고쳐 나가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벗을 사귐으로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신한 친구 일수록 충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良藥苦於口 利於病 忠言逆於耳 利於行”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좋고 충고 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함에는 이롭다. 라는 말이 연상된다.
이 몸 허러내여, 낸믈에 띄오고져,
이 믈이 우러녜여, 한강 여흘 되다 면,
그제야 님 그린 내 병이, 헐할 법도 잇나니.
낸믈: 냇물.
우러녜여: 울며 흘러가서.
헐할법도: 나을 법도. 나을지도,
이 몸을 헐어 가지고 냇물에 띄워 보고 싶구나.
이 물이 흘러가서 임이 계시는 서울 한강의 여울목이 된다면
그 때에 임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의 병이 조금쯤은 나을 수도 있으련마는.
한강의 여울 소리를 행여 임께서 들었더라도
그것이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 까닭이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임의 귀에 들렸다는 그 사실만 가지고도
내 마음의 안타까움이 풀어지리라는 것이다. 아니,
임이 듣지 못한다 치더라도 임이 계시는 서울로 갔다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병은 조금쯤 나았을 것이다.
버림받는 여인의 심정에 기탁해서 임금을 그리는 정을 나타낸 것이다.
송강의 유명한 歌辭인 思美人曲, 續美人曲 이 모두,
여인이 임을 그리는 심정을 통해 戀君의 정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 시조 또한 같은 수법 이라 할 수 있다.
이고 진 뎌 늘그니, 짐 프러 나를 주오,
나는졈엇으니, 돌히라 무거울가,
늘거도 셜웨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가,
이고 진: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졈엇으니: 젊었으니.
돌히라: 돌 이라도.
셜웨라커든: 서럽다 하겠거늘.
머리에 이고 등에 짐을 진 저 늙은이 짐을 풀어서 나를 주시오.
나는 젊었으니 돌덩이 인들 무겁겠소?
늙어지는 것도 서럽다고 하겠거늘 하물며 무거운 짐까지 저서야 되겠소?
‘斑白者不負戴(반백자불부대)’의 훈민가 16중 1수다.
이 연시조는 작가가 선조 13년에 강원도 觀察使로 부임하여
이듬해까지 재임 하는 동안 백성들의 교화를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이 훈민가의 근원은 송나라 신종 때 陳 高靈이 仙居縣 백성에게 내린
仙居勸諭文(선거권유문) 이라는 13개조로 된 것이 있는데
여기에다 ‘君臣’‘長幼’‘朋友’의 3개 항목을 더하여 놓은 것이다.
이 훈민가를 孝宗9년에 金正國의 警敏萹의 부록으로 붙인 뒤부터
'경민편’이라고도 불린다.
재 너머 성권농 집에, 술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勸農: 농사를 장려하는 소임.
언치: 안장 밑에 까는 짚 또는 털 헝겊. 지
즐타고: 눌 러 타고.
정좌수(鄭座首): 송강 자신. 좌수는 지방 향청의 우두머리
성권농은 바로 조선 성리학의 거봉 牛溪 成渾을 가리킨다.
송강 보다 한 살 위로 율곡과 함께 송강의 평생 친구였다.
급박한 詩行의 흐름이 술벗을 찾아가는 술꾼 송강의 급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재 너머 살고 있는 성 권농의 집에 빚은 술이 익었다는 말을 어제 들었기로
누워있는 소를 발로 차서 일으켜 세우고 언치만 놓고 껑충 뛰어 올라타고
고개를 단숨에 넘어 성 권농의 집에 이르렀다,
“여봐라. 너희 주인 계시느냐? 정 좌수가 왔다고 아뢰어라.
송강은 시조를 지음에 있어 언어의 구사가 실로 자유자재하다.
이 시조에서도 초, 중장 까지는 생략되어 있는 사연에서
술 좋아하는 송강이, 술벗을 찾아가는 쾌기를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쟝사왕 가태부, 혜건대 우습고야,
남대되 근심을, 제 혼자 맛다이셔,
긴 한숨 눈물도 과커든, 에에할 줄 엇뎨오.
쟝사왕 가태부: 장사왕의 태부인 賈誼.
혜컨대: 생각 하건데.
남대되: 남 모두와.
맛다이셔: 맡아서.
과커든: 과하거든.
에에: 어이어이 할. 울음소리의 擬聲語인 ‘에에’에 동사화접미사 ‘다’가 붙어 동사로 된 것이다.
엇뎨오: 어쩐 일이요.
長沙王의 太傅(왕의 스승)인 賈誼(가의)는 생각해 보니 우습구나.
남 모두의 근심을 자기 혼자 맡아 가지고
긴 한숨이나 눈물을 흘리는 것도 지나치거든,
하물며 어이어이 하고 통곡을 하여 어쩌자는 것인가.
‘가의’가 나라 걱정을 도맡아 근심한 고사를 인용하여
그를 우스운 사람이라 하였지만, 실은
송강 자신이 정치에서 물러나 있으면서도 나라의
걱정과 연군의 정을 잊지 못하는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가의는 학문이 깊어 나이 스물에 博士가 되었으나
간신의 참소로 장사왕의 태부로 내쫓김을 당하였다.
장사로 가는 도중 湘水를 지나다가 楚 의 屈原을 조상하는 글을 지었다고 한다.
장사에 3년 있다가 다시 梁王의 태부가 되었는데
나라를 근심하고 정사를 바로잡기위하여 눈물겨운 상소를 하였다.
양왕이 죽자 통곡을 오래 하다가 죽으니, 그의 나이 33세였다고 한다,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 일란 다여라,
디나간 휘면, 애담다 엇디 리,
평성애 고텨 못할 일이, 잇뿐인가 노라.
사라신 제: 살아 계실 때.
휘면: 後이면.
고텨: 다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동안 섬기는 일을 다 하여라.
돌아가신 뒤 면 아무리 애닯아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평
생에 다시 할 수 없는 일은 부모 섬기는 일인가 한다.
‘子孝'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살아 계실 동안에
부모 공경을 열심히 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시상과 비슷한 格言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死後萬盤珍羞 不如生前一杯酒
돌아가신 뒤의 잘 차린 음식이 살아 계실 동안의 한 잔 술만 못하다.
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 盞 먹새그려, 또 한 盞 먹새그려,
곳 것거 算 노코, 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後에 지게 우에거적 더퍼 주리혀매여 가나 ,
流蘇寶帳에 萬人이 우러 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白楊숲에 가기 곳 가면,
누른 해, 흰달, 가는비,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 盞 먹자할꼬,
하믈며 무덤우해 잔나비 파람 불 제, 뉘우친들 엇디리.
산 놓고:숫자를 셈하면서.
주리어: 졸라매어, 묶어.
유소보장: 곱게 꾸민 상여.
울어 예나: 울며 따라 가나.
어욱새: 억새풀.
속새: 풀 이름.
덥가나무: 떡갈나무.
가기곳 가면: 가기만 가면.
소소리 바람: 이른봄에 살 속으로 파고드는 음산하고 찬바람.
잔나비: 원숭이.
將進酒辭로 불리는 이 작품은 작품 연대가 비교적 뚜렷한 것 중
국문학 상 최초의 사설시조 이며.
덧없는 인생을 술로 달래고 즐기자는 허무주의적 향락주의자의 권주가이다.
어떤 책에서는 二伯의 ‘장진주’나 杜甫의 ‘遣興五首’(견흥5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소재와 시상을 빌려 왔을 뿐 송강의 독창적인 작품이다.
특히 ‘어욱새 속새......소소리 바람 불제’의 구절은, 적막한 무덤의 풍경을
그 날씨와 계절의 변화 까지 절묘하게 그려낸 대목으로
가히 대가의 솜씨라 할만하다.
한문 투의 말을 피하고 생활어를 자유로이 구사하여
멀고도 고적한 곳. 北邙의 정경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며, 술 한 잔을 권하는 절창이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나무 가지를 꺽어 술잔 수를 셈 하면서, 한 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뒤에, 지게 위에나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메어 가지고 무덤으로 가져가나
화려한 장식의 상여에 실려, 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사시나무 숲속에 가서 묻히고 나면
누른해. 밝은 달. 가랑비. 함박눈. 쓸쓸한 바람이 불제,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권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서 원숭이가 슬피 울 때면, 아무리 지난날을 뉘우쳐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팔목 쥐시거든, 두 손으로 바티리라.
나갈데 겨시거든, 막대 들고 조츠리라,
향음쥬 다 파한 후에, 뫼셔 가려 하노라.
막대: 지팡이.
조리라: 따르리라.
향음쥬(鄕飮酒): 마을 사람들이 어른을 모시고 揖讓(읍양)의 禮儀를 갖추어 음주하는 예식을 하는데 이 때 마시는 술.
파: 끝난.
어른이 만일 起居 하실 때 팔목을 잡는 일이 있으면
두 손으로 넘어지지 않게 바치리라.
외출 하시는 일이 있으면 지팡이를 들고 따르리라.
鄕飮酒가 끝난 뒤에는 모시고 가리라.
‘長幼有序’란 제목이 붙은 것으로 어른을 공경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